생명의강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자신의 인생을 준비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목적을 준비하는데 육체적인 일(노동)을 필요한 교육의 하나로 보고 있으며, 그 일에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우리에게 주셨고, 그 세상을 탐험하고 이해하길 원하셨기 때문에, 지식을 탐구하는 것에도 가치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세상 역시 ‘알 수 있는’ 곳 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알아갈 수 있습니다. 학생들이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지식을 추구하게 되기까지는 훈련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성경적 세계관 안에서 우리는 지식, 학문, 노동이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전인적 인간입니다. 교육은 지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차원-영적, 혼적, 육체적, 정신적 차원-을 통해 전인적인 인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중 한 가지가 다른 것들보다 귀하다고 여기시지 않습니다. 전인적 인간을 기르는 것은 이 네 가지 영역이 통합될 때입니다. 이 네 가지 영역을 훈련해야 온전한 존재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희는 학생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탁월하게 되길 바랍니다. 또한 삶에 찾아올 도전의 기회를 잘 준비하길 바랍니다. 이는 어떤 학생들은 대학을 진학하게 되리라는 뜻입니다. 한국에서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학생들은 대입 시험을 치러야 하지요.

 

그렇다면, 대학을 가기 원하는 학생들에게 노동은 어떤 준비를 시키는 것일까요?
먼저, 저는 ‘열심히 공부한다’는 표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은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이야기 합니다. 여기에는 누구나 열심히 공부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는 암묵적인 추론이 포함되어 있지요. 하지만 제 경험상 막 중학교에 들어온 학생들은 대부분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그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한다는 건, 정보를 암기하거나, 한 페이지를 계속 쳐다보거나, 사건에 대한 단어들을 읽는 것이 공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뜻이 아니지요. 아주 솔직한 부모들도 숙제나 설명을 해야 할 때면, 학생들이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또는 어떻게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어야 할지 확신이 없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공부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역시 하나의 기술이며, 노동은 직업을 준비하는 하나의 기술입니다.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대답하는 실제적인 훈련인 것이지요. 이는 우리가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노동을 참여할 때에는, 즉각적인 노동의 피드백이 있습니다. 잘 참여하고 있는지가 스스로에게, 그리고 남들에게 확연하게 보이게 됩니다. 잘 참여하지 않고 있다면, 그 학생이 노동과 공동체의 학생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교실에서의 경우, 잘 듣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조용히 앉아있다면, 잘 듣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습니다. 또한, 육체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에는, 몸이 스스로에게 말해줍니다. 몸의 일부는 근육의 이완과 수축으로 통증을 느끼게 되지요. 이는 성장과 발달의 정상적인 부분입니다. 뇌 역시 신체 근육의 일부로, 발달을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학생이 노동의 방법을 배울 때,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방법을 배우게 되면, 결과를 내기 시작하지요. 학생들은 자신이 일한 것/하지 않은 것을 보면서 직접적인 원인과 결과를 배우게 되고, 책임감을 배우게 됩니다. 이로 인해 자신감과 책임감을 배우게 되고, 이는 교실과 학문의 영역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우리가 노동할 때에 우리의 정신은 멈춰 서는 것일까요? 다행히도, 탁월하게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계속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과 생각과 신체를 하고 있는 일에 적용시킵니다. 그럼 우리가 교실에서 공부하거나 경청할 때 우리의 몸은 멈춰서는 것일까요?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잠이 오게 되고, 잠을 깨워야 할 것입니다. 교실은 학문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유일한 장소일까요? 물론 아니지요! 노동 시간만이 우리가 육체적으로 열심히 일해야 하는 시간일까요? 물론 아니지요!

 

노동과 공부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는 또 다른 관계가 있습니다. 노동에서는 도구가 사용되는데, 교실에서 역시 도구, 또는 ‘방법’을 배웁니다. 도구를 사용 및 적합한 도구의 선택이 사실 일의 성과를 정하게 되지요. 한 과목을 마스터하기 위해 ‘공부도구’를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단순한 공식을 암기하는 것보다 효과적이고 탁월한 공부방법입니다.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과, 드라이버로는 책장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차이와 같지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많은 물건을 고칠 수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자신의 지식을 여러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는 마치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고자 정보를 암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유용한 방법이고, 책장도 얻게 되겠지만, 다른 일을 하도록 적용하지는 못하겠지요. 그렇지만 지식을 적용하는 방법을 배운 학생들은 새로운 지식과 연결하고 새로운 질문을 할 것입니다. 학생들이 대입시험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을 때, 답을 다 안다고 생각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이 아는 것을 적용하여 더 큰 이해와 결과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학생들은 자신이 아는 지식을 통해 답을 쓰는 방법을 배웠기 때문에 공식을 외워 답을 쓰는 학생들보다 시험 준비가 더 잘 된 학생인 것입니다. 진정한 기독교 교육은 지식과 창조자가 어떠한 관계인지, 그리고 또 다른 지식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언제나 가르쳐야 합니다. 노동을 하면서 우리가 몸과 마음을 통해 배우는 것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것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노동에 유의미한 측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교사입니다. 교사 없이 도구를 사용하는 모든 방법을 적절하게 알게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안내책자(메뉴얼)는 도구를 사용할 수 있도록만 겨우 도와주는 정도지요. 저는 드라이버를 사용하는 법을 가르쳐줄 누군가가 필요했습니다. 여러분도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었겠지요.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 없이 그 말만 지키려한다면, 온전한 학습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학생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에게 도구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사가 성경적 관점입니다. 많은 학생들이 홀로 공부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지식이 많은 학생을 배출할 수는 있겠지만, 그 정보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가르쳐줄 교사가 필요할 것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자신이 배운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기독교사가 필요합니다. 학생에게는 그 길을 말해줄 뿐 아니라 행함을 보여줄 교사가 필요합니다. 학생에게는 교사와 학생의 관계를 계발해줄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생명의강 학교는 소년 소녀들을 온전한 방법-영적, 혼적, 육적, 정신적-으로 교육하는 일을 부모님들과 동역합니다. 학생들이 자신의 미래를 하나님 앞에서 준비하며 나아갈 때, 그들이 생명의강 학교의 교육을 통해 삶의 도전 과제를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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