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핑보드 위에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은 설령 서핑보드가 뒤집어질지언정, 우리는 손에 손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면 되니까. 지금 우리가 할 것은 한 마음을 품고, 이 진귀한 기회를, 짜릿한 서핑을 즐기는 것이다. -by Principal Liz

 

설리설리 두준두준......
불타는 열정으로 두근대는 가슴에 잠 못 이루던 때가 바로 어젯밤 같은데, 이젠 그 풋내기 시절의 설렘은 사그라지고 어느새 일 년 후 졸업을 앞둔 생강 ‘장아찌’가 되어 있다.

학교와의 인연은 나의 ‘초딩’시절 때부터 지속되어왔다. 부모님의 권유(?)로 준비된 백성 기도회에 참여하다 네 번째 강 프로젝트에 대해서, 당연히 학교에 대해서도 듣게 된 나. 자세히 알아들었던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안학교를 세울 거라는 말을 들었던 그 순간 왠지 모르게 뭔가 Feel!이 왔다. ‘아, 내가 가야겠다!’

 

그후, 네 번째 강 계획에 관심을 가지게 된 나는 자발적으로 준비된 백성 모임에 참여해 예배하고, 함께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 기도하였다. 당시에는 무려 99% 정도가 어른들이었고, 학생이 별로(아예?) 없었던 데다 하나님도 잘 모르고 뭣도 모르는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매우 뻘쭘하고 괜히 좌불안석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간들이 나를 준비시키는 귀한 과정이었음에, 그 부족하지만 순수했던 기도들을 들으셨음에 감사하다.

 

   
▲ 생명의강학교 입구에 세워진 표지판 ⓒ생명의강학교

 

중 1때 노동학교 참석은 생명의강 학교에 가야겠다는 나의 다짐을 다시 한 번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건 꼭 자기소개 할 때 대안학교 다닌다고 하면 왠지 멋있어 보일 것 같다거나, 친구들이 다 똑같은 학교 다닐 때 혼자서 다른 학교에 다니면 뭔가 특별해 보일 것 같은 거창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시 세상에 대한 반감과 자괴감으로 가득찼던 가련한 열네 살 소녀의 가슴에 적셔주셨던 북한선교에 대한 막연한 비전과 희미한 사명감이 이 학교가 ‘내가 꼭 가야 할 곳’이라는 마음을 먹게 하였다.

 

그런데 학교는 내 생각처럼 빨리 지어지지 않았다. 뿅 하고 생기면, 짠 하고 바로 가면 될 줄 알았는데....

 

2010년, 그러니깐 안식년으로 이곳저곳을 배회하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고 있을 즈음 태백에 새로운 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조금 과장을 보태, 학교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코딱지보다 조금 큰 건물에 우리 집 마당만한 운동장. 밤이면 긴 생머리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나올 것 같았던. 저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참 불쌍하다 생각했던. 예전에 친척집 가거나 할 때면 몇 번씩 지나치곤 했었던 초라했던 곳.

 

그런데? 새로 생긴 학교가 바로 그 ‘하사미 분교’라는 곳을 임시건물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설마하니 그 학교가 바로 ‘그’ 학교였다.

 

게다가 자세히 알아보니 갓 태어난 그 신생학교는 중2까지밖에 학생이 없다고 하였다. 이런! 그 시절에는 선배님이 선생보다 높고, 한두 살 차이에도 마치 몇 십 년 세월이라도 차이 나는 듯이 깍듯한 존댓말을 썼었는데, 내가 그 학교에 들어가려면 일 년을 꿇어야 한다는 말.

 

버스에서 고등교복을 입은 친구들을 만나면 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 걱정이 되었지만, 동생들이랑 친구 먹는 건데 적응 잘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많은 고민 끝에 마음을 다잡고 원서작성을 하고 면접을 봤다.

 

보자마자 덜컥 합격. 고민도 고민이었지만 한편으론, 당시 다니던 일반학교를 자퇴하고 일 년 동안 잉여처럼 혼자 지내 학교가 많이 그립던 터라 몇 달 동안 기대수치가 무럭무럭 상승해 있었다.

 

특히, 등교 전날에는 너무 설레서 한 숨도 자지 못했던 것 같다. 내일 학교에 가면 양쪽으로 머리를 땋은 산골 아이들이 양 볼에 보조개를 드러내며 “아, 안녕? ^-^ 너무너무 반가워~ 정말 환영해 우리 친하게 지내자! 호호호”하며, 홍조 띤 얼굴로 다가와 내 손을 꼬옥 부여잡아 줄 것만 같았다나?

 

그 런 데 등교 첫 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눈앞에 펼쳐졌던 광경은 그야말로 ‘장관(壯觀)’이 아니던가. 상상 속 영희와 철수는 다 어디가고, 중2 병에 걸려 보이는 아이, 맨 인 블랙도 아니고 올 블랙 패션에다가 검은 아우라가 비치는 아이. 부담스러운 눈빛들. 견제하는 듯한 느낌. 면접 때 학생들 자랑을 늘어놓으시던 외쿡인 교장선생님이 심히 원망스러워졌던 순간이었다.

 

오리엔테이션 시간의 그 어색했던 분위기는 또 어떻게 설명해야 한단 말인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뭐하는 학교인지도 모르는 것 같고, 학교에 억지로 온 아이, 심히 융통성 있는 커리큘럼, 가히 기독교 학교라고 여겨질 만한 행동들과 언어들은 그동안 꿈꿔왔었던 나의 학교생활, 그 환상을 증발시켜버리기에 충분했다.

 

   
▲ 생명의강학교

 

2011년, 나의 ‘생명의 강 항해일지’는 그렇게 열일곱 살 때 시작된다. 하지만, 난 그 대단한 학교에 얼마 되지 않아서 적응했고, 여자 애들과의 관계는 한 달도 채 되기 전에 엄청난 진전을 보여 이전 친구들만큼이나 친해지는 결과를 달성했다.

 

우리는 자주 카페에 모여 하나님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시간가는 줄 몰랐고, 매일 문자메시지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궁금증들을 나누며 신앙의 깊이를 쌓았다. 우리, The Rols 1st들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함께 겪었고,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했기에 얼굴만 보고 있어도 힐링이 되는 엿처럼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지금 난 시트콤 같은 나의 학교생활을 즐기며 열심히 다니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모든 이들에게 학교가 이렇게 ‘재미있는 곳’이길 소망한다. 아직 어색하고 부족한 점들이 정말 많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전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이 학교의 역사 한가운데에 서 있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아마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학교 모습과 실제는 많이 다를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쭉 이렇게 싱숭생숭한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았으면 한다.

 

생명의강 학교에서 배운 것은 나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겸손’,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수용’, 그리고 비록 맨땅일지라도 과감하게 시도해보는 ‘용기’, 서로를 견뎌주는 ‘인내’, 혼란 속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듣는 ‘믿음’, 감정을 표현하는 법, 소통하는 법, 사랑, 노동과 기도.

 

통일을 준비하는 학교인데 왜 북한에 대한 걸 배우지 않는지 답답했던 나에게, 그 땅의 문이 열렸을 때, 이 학교에서 받고 있는 이 훈련들이 얼마나 실질적으로 쓰일지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처음 길을 내는 것은 언제나 힘들다. 모델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저번 학기에는 국적불명의 ‘권태감’이라는 쓰나미가 우리를 덮쳐 한동안 허우적거렸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이 해답 없는, 하지만 뜻있는 길을 함께 개척해 나가고 있다.

 

버티기 힘들고 어려웠던 과정을 여기까지 견뎌낸 것은 서로를 향한 응원과 중보, 발로 뛰시는 부모님들과 인내심의 초 절정을 달리는 선생님들, 그리고 샘플로 실험되기를 자처한 우리들이 있었기 때문이지 싶다.

 

많이들 묻는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걱정 안 돼?” 아침 예배시간에 나누었듯, 얼마 동안엔 나다나엘이 빙의해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으리오...하는 회의감에 푸욱 빠져 있었고. 허허
일 년의 학교생활을 앞두고 있는 요즘도 걱정이라는, 두려움이라는 놈이 가끔 내 마음 문을 벌컥벌컥 열고 들어오곤 한다.

 

높은 벽 앞에서 좌절한다. 넘어진다. 진도도 많이 뒤처지고 있고, 뇌 속의 ‘delete system’은 통신망 속도와 더불어 날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고, 초스피드로 달려가는 세상과 초 여유롭게 가고 있는 학교 사이에서 이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 ‘확신’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또 일어선다.

혹자는 말한다. “넌 너무 현실을 몰라.” 현실, 하하... 대강 어떤 의미로 그렇게 말씀하시는지 안다. 하지만, 걱정 안 해주셔도 된다. 나는,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난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에 덜컥 붙거나(물론 그러면 좋겠지만, 정말 감사하겠지만) 사회에서 쉽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말하는 성공에 관심도 없을뿐더러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을 열심히 믿어도 소위 세상에서 말하는 ‘실패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말자는 뜻으로 오해하시지 않길 바란다. 우리는 각자에게 맡겨진 공부를 꼭 해야 한다. 열심히 하나님이 쓰실 때 기분 좋은, 최고의 도구로 준비되어야 하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아, 하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하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런 막연한 생각이 우리를 계속되는 귀차니즘 모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후회 안할 만큼만 열심히 했으면 좋겠다. 처음이니만큼. 우리 모두 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면서 ‘함께’ 잡아주며 갔으면 좋겠다.

 

‘처음이니까 너희가 대학을 잘 가야 후배들에게도 본이 되고, 학교 위신도 높아지니까 열심히 잘 해봐라. 공부를 해야지 학생인데... 잘 될 수 있을까? 대학 잘 가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라... “여러분들에게 자주 듣는 말인데, 개인적으로 죄송한 말씀이지만 들을 때마다 부담이 되고 마음이 불편하다. 진리를 찾아 헤매는 우리의 건전한 방황에 쏟아지는 과분한 관심들. ‘될 대로 되라’식의 빨리빨리 트렌드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 식의 주입식 트렌드. 창조론에 대해 단연코 의심조차 해보지 않고, 그게 당연하다 믿어온 나로서는 아주 이해가 잘 된다.

종교도 강요되어지고, 교회 안에서도 알게 모르게 ‘사상’주입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으니깐.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작은 파동을 일으키는 역을 맡았다. 대추나무라고 알고 있던 것이 실은 다래나무가 아닐까...처럼 조금은 무모해보일 수 있는 돌맹이들을 던지고 있다. 지금은 보잘 것 없어 보일지 모르나 후에 아주 큰 변화를 일으킬 스타트를 끊은 것이다. ?-!로의 변화는 사실상 진행 중인 것이다.

 

다시 돌아가, 현실은 내가 최상의 교육을 받고 있고, 하나님이 그의 자녀를 최상의 길로 인도하실 거라는 사실. 문제를 덮지 않고 해결하고 넘어가려고 하고,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하는 매일 더불어 변화하는 그것이 최상의 교육. 나를 너무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끄실 것이 확실하기에 최상의 길.

 

아, 행복하다. 찾으며 두드리며 가는 이 과정이. 짜릿하다. 그 분의 음성을 내비게이션 삼아 한 발자국씩 조심스레 내딛어보는 이 삶. 여기저기서 후원 들어오는 기도를 촉매제 삼아 우리는 자라고 있다. 이것이 청춘이요, 열정이 아닌가. 이 뜨거운 삶을 이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축복을 나는, 우리는 포기할 수가 없다.

 

   
▲ 태백 생명의강학교 엄지은 양 ⓒ생명의강학교

작년까지만 해도 특정 학생들만 옮기던 의자와 책상을 이제는 다함께 옮긴다. 눈에 보이는 성장, 느껴지는 우리의 배움. 서로의 모습 속에서 발견되는 예수님. 어느 누구도 더해지거나 빠져서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는 정교하게 연결된 우리 공동체에서 ‘내가 사랑받고 있구나, 내가 소중한 사람이구나.’ 저절로 깨닫게 되는 시간들. 맏언니 미소를 짓게 만들어주는 상쾌한...후배님들?! 이런저런 에너지들로 인해 오늘도 지독한 회의감과 뿌연 무료함을 딛고 일어서 한 발짝 걷는다.

p.s. 이렇게 자라기까지 수많은 사건들을 하나하나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학교에서의 시간들이 얼마나 값지고 귀한 훈련이었는지 십대의 끝자락에서 새삼 느낀다. 그간 모난 나를 견뎌준 선생. 부모. 친구님들께 심심(甚深)한 감사를 드린다.

엄지은/ 생명의강학교 고등학교 3년

*이 글은 생명의강학교에서 발행하는 잡지 최근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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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기사 링크 http://www.ukorea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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