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신 예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도 요한이 사용한 헬라어는 ‘로고스’란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말하고 가르치고 생각하는 것과 관련해 사용되었습니다. 또한 지혜 혹은 가르침, 지식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바로 이 말씀을 통해서 모든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 혹은 로고스를 통해 만물이 지은 바 되었다고 우리에게 이야기합니다. 이 능력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 세상에 와서 육신이 되신 이 말씀은 이를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는 진정한 지식입니다.

 

“대저 야훼는 지혜를 주시며 지식과 명철을 그 입에서 내심이며”(잠2:6).

 

하나님 아버지가 창조의 말씀을 하시고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이 되게 하기 위해 그 말씀을 세상에 보내셨던 것처럼, 모든 지혜, 지식, 명철이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대 대부분의 문화권에서 지식은 신성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사람들은 지식을 소중히 간직하며 무언가 신적인 것-많은 신들의 왕국이든, 유교경전에서 말하는 하늘이든, 육신이 되신 말씀이든-과 이어주는 수단으로서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했습니다. 지식은 신이 주신 선물이며 신을 섬기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서면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많이 잊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지식은 우리에게 있어 매우 실리적인 것입니다. 지식을 신성하게 여기는 마음과 지식에 대한 경외심을 잃어버렸습니다. 지식은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뭔가를 잘 해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게 합니다. 나라들은 교육과 지식을 강조하는 목표를 통해 경제적인 것과 권력을 추구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이 중 어디에서도 지식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 위로부터 오는 특별한 축복, 우리보다 더 큰 존재와의 연결을 가능하게 하는 것, 우리의 이해와 우리 스스로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류의 생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하게 위로부터 오는 선물로서의 지식을 끌어안는 대신, 우리 자신의 목적대로 사용하기 위해 지식을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려 움켜잡았습니다.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약1:17).

 

교육의 근본적인 목적은 지식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모든 의미, 전달하기 원하는 모든 것, 우리가 사용하려고 생각하는 모든 방법을 생각할 때, 특히 중요한 것은 빛의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선물을 전달하고 있음을 기억하며 겸손한 자리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지식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와 우리에게 주어진 좋고 온전한 것들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모든 좋은 은사들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송축하기 위해 지식을 사용할 때, 지식도 우리에게 축복이 됩니다.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렘5:1).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를 구하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전달된 말씀은 그들이 더 이상 진리를 구하지 않는다는 것, 자신의 이기적인 목적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식은 더 이상 진리에 대해 배우거나 진리이며 생명이신 분에 대해 배우는 것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단지 이기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디를 보든, 어디에 사람들이 모이든, 오직 생각 없이 바삐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흐름만 있을 뿐입니다.

 

단지 자신들의 즐거움을 위해 지식을 사용했기 때문에, 갑자기 파멸이 그들을 덮쳤습니다. 이것은 불가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의 파멸은 하나님의 징계였으며, 만일 그들이 다시 진리로 돌아오면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받아주겠다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그분이 악해서 우리를 괴롭히기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이끈 우리의 이기적인 탐구의 불가피한 결과입니다. 지식의 잘못된 사용, 하나님을 향하기보다 자기 자신을 향한 지식의 사용은 파멸을 가져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입증하며 지식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라는 사실을 입증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진리를 구할 때 우리가 찾게 되는 것은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지식의 올바른 근원을 향해 갈 때에, 우리는 지식이 주는 기쁨, 권력 혹은 성공 그 이상의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삶의 비밀과 주님이 주시는 완전한 자유의 기쁨을 배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자신만을 보며 어두움 속을 방황하거나 인정과 안전, 즐거움을 향한 목마름으로 헤매는 대신 하나님의 영광의 찬란함과 그 빛이 가져다주는 기쁨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따스한 빛 가운데서 우리가 붙잡고 있던 모든 것, 우리가 간절하게 열망했던 모든 것은 그 색이 바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이 단지 더러운 넝마조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똑똑히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을 교육하고 우리 자신도 계속 배우려고 할 때 모든 교육과 지식, 진리 탐구에 온전히 겸손하게 접근해 나간다면 그것이 얼마나 축복이 될까요! 스스로 노력하고 우리 머리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조차 우리가 배우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거룩한 선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런 지식이 있을 때 우리는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진리이신 하나님을, 그리고 그분으로부터 비롯된 만물에 대한 진리를 배우기 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열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우주를 다스리기 위해 세우신 모든 법칙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물에 대해 가능한 모든 것을배우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이 사랑하시는 인간-우리의 다른 점, 비슷한 점, 역사, 정치 조직, 노력, 성공, 실패 등-에 대해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능한 모든 것을 배우기 원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지식과 그 지식을 배울 수 있는 능력 둘 다. 배우고 연구할 때 우리는 성공을 보게 될 것이며 발견을 즐거워할 것이며 합당한 힘을 얻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선물을 주는 사람이라면 모두 그렇듯, 하나님은 우리가 선물의 모든 유익을 누리길 원하십니다.

 

육신이 되신 말씀이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지식을 누립시다. 지식의 열매를 누립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지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됨으로 그분께 돌아가야 함을 기억합시다. 모든 지식을 거룩한 것으로 여기며 겸손하게 다가갑시다.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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