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책임 중 하나는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좋은 소식(복음)을 다음 세대에게 전하는 것, 하나님의 경이로움을 다음 세대에게 말하는 것이다. 교육은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방법 중 하나다. 기독교 학교는 성경적 세계관을 통해 학생을 전인적인 인간(신체적, 정신적, 영적, 사회적인)으로 교육함으로 이 일을 행하고 있다.

 

한국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식을 위해 돈과 시간, 에너지를 희생한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에게 교육이란 마음에 아주 친숙한 주제이며, 또한 교육은 하나님께도 아주 중요한 문제이다. 하나님은 교육에 대해 아주 많은 말씀을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이 교육에 대해 생각하시는 바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언제나 같지는 않다. 성경적 세계관 교육은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교육과는 다른 목표를 설정하며, 다르게 가르치고, 보기에도 다르다.

 

이사야 55:8, 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로마서 1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대를 본받지 않으려면, 우리는 본받는다는 것에 어떠한 압력이 가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우리 문화(한국, 미국, 그리고 다른 문화) 속 교육 체계는 주로 학문적인 목표를 추구하고, 아이를 전인적으로 교육하지는 못한다. 그 문화가 아이를 창조한 분과 디자인한 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원칙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헌신적이고 사려 깊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러한 세상의 방식(패턴)에 취약하게 된다. 우리는 마음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생각에 변화를 받아야 한다. 교육의 영역에 중립지대는 없다. 모든 학교와 모든 수업엔 기본이 되는 신념들이 있으며, 각각의 수업은 이 신념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교사는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자신의 수업에 담게 되어 있다.

 

부모로서 우리는 자녀가 몸에 어떤 음식을 담는지(먹는지) 신경을 쓴다. 우리는 아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어떠한 것들을 담고 있는지 신경을 쓰는가? 아이들이 정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선생님들은 우리의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가? 우리는 아이들이 그들의 삶 가운데 성공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데, 우리는 성공을 보장해줄 수 있는 그런 준비- 예수 그리스도 안의 정체성과 부르심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를 시키고 있는가?

 

나는 지금이 그 어떤 때보다 더 기독교 교육이 시급한 때라고 믿는다. 현대 문화는 기독교 가정의 삶을 잠식하고 압박하고 있다. 취업, 직장, 학교 그리고 교회가 그들을 더 취약하게 만들고, 공급하지 않으며,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한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살기 위해 하나님의 기준에서 도망쳤다. 많은 이들이 삶의 목적이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인 젊은이들이 말이다! 우리는 빼앗긴 이 땅을 되찾을 것이다. 하나님께 속한 그 땅을.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우리의 적, 사단은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았다. 사단은 우리로 하여금 이것들이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게 할지 모르나, 그의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교육의 영역은 빼앗긴 땅이며, 이것을 되찾아오는 일은 우리의 특권이자 의무다. 이것은 명령이다. 우리는 해야만 한다. 이는 제안이 아니다. 생명의강 학교는 이 명령에 대한 반응이다. 이는 젊은이들을 세상에서 빼내려는 것이 아니며, 아이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의의 자리에 설 수 있도록 준비시키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세상과 맞서게 하는 일이다.

 

마가복음 9: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가복음 7: 7,8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긍휼, 정의, 자비가 어떤 것인지 보여줄 수 있고, 또한 동시에 전략적이고 목적의식이 있는 생각을 하는 사람으로 키우고자 한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는 도구를 주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자녀를 훈련시키는 것은 교육을 통해서이며, 이때의 교육은 ‘마음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변화를 받는다.’는 하나님의 성경적인 원칙을 따르는 교육이다. 아래의 누가복음 말씀은 내가 교장으로 섬기는 생명의강 학교의 학교 성구이다.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님은 “쉐마(Sh’ma)”로 알려져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다. (“쉐마”는 히브리어로 “쉐마”, “들으라”로 시작되는 문장이다.) 쉐마는 예배로의 부르심이다. 쉐마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부모로 하여금 자녀가 하나님께 더 연결되도록 자식을 가르치기를 촉구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우리의 자녀가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에 더 연결되게 하는가?

 

이것이 “쉐마”이다.

 

신명기 6:4-9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교육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의 제자 되게 하는 과정이다. 나와 남편은 우리의 가장 큰 책임이 우리의 자녀를 교육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해하며, 세상 가운데 자신의 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한 다양한 자료들을 찾아보았으며, 교육이 우리 가정의 우선순위가 될 수 있도록 우리의 직업과 여가를 조정했다. 교육은 우리가 저녁밥을 함께 먹을 때 이루어졌다. 우리가 데려온 손님들, 친구들과 함께 이루어지기도 했고, 같이 살았던 사람들도 함께했다. 교육은 축구장, 농구코트, 도서관, 그리고 차 안의 대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은 우리가 삶으로 증거 하는 것들을 보았고, 우리가 때로는 증거 하지 못하는 것도 보았고, 또 우리가 그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았다. 우리가 무엇을 사는지 보았을 때 교육이 일어났으며, 우리가 무엇을 사지 않는지를 보았을 때도 교육이 이루어졌다. 우리가 보는 것, 우리가 읽는 책과 우리의 평가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아이들이 듣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조차 교육은 이루어졌다. 신명기가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는 장소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는지를 이해하고, 우리가 언제나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할 일은 자녀를 사랑하는 일에 초점을 맞춘, 사려 깊고 현명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사실 학교는 교육에 있어서 우리를 돕는 존재일 뿐이다. 부모로서 우리는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고,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가르칠 수 있는 기회라면 모두 잡는 것.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방법으로 “함께 있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그들은 자녀들을 잃고 말았다. 그들은 “자녀들을 돌려받기를” 갈망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야고보서 4: 2-3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골로새서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교회는 부모들이 자녀를 가르치는 것을 도울 책임이 있다. 하나님은 교육의 목표를 긍정적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마태복음 29: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그러면,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교육 목표라고 할 수 있을까?

 

제자를 만드는 일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학생을 두는 것과, 모든 명령에 순종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복음전도의 대명령이며, 교육의 대명령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는 개인을 복음화 하는 일을 더 우선시 하였으며, 학생을 가르치고 제자를 만드는 일을 소홀히 하였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많은 교회에 선교단체 및 선교사들이 소속되어 있지만, 학교는 얼마나 될까?

 

제자를 기르는 교육은 아주 중요하고,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주일 하루에 주일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통합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하나님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우리는 필요한 시간을 들여, 목적의식을 가지고 학생들을 학교에 보내는 일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적 세계관을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기독교 학교를 통해 하고 있다. 교사들과 그들의 방식, 관리자와 스텝들, 학교 경영까지 모든 것들이 세계관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전진하는 시각을 드러내준다. 우리 학생들은 세상의 싸움에서 피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고 변화시킬 도구를 받았다. 학문적인 탁월함은 개인의 직업 능력 신장을 위한 목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 있다.

 

교육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가정에 있다. 쉐마를 기억하는가? 하나님은 아이들을 가정 안에 두셨다. 아이들을 교육할 책임은 일차적으로 가정에게 있으며, 아버지에게, 가정 내에서는 가정의 머리로서 아버지가 주된 책임을 진다.

 

시편 78:5,6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부모는 자녀를 다른 누구보다 사랑하기 마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디자인이며, 세상이 이를 바꾸거나 왜곡하려하는 만큼, 여전히 그 관계가 자녀를 양육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이라는 것이다. 부모는 그 교육에 대한 책임을 보물같이 여겨야 한다. 이 책임이 박탈당한다면, 아이들이 고통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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